이번 주 박지원 국정원장 청문회에 관심이 쏠려 있던 날, 지난27일 법무·검찰 개혁위원회가 검찰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번지르르한 수사학으로 포장된 발표 내용을 행간에 숨어 있는 뜻까지 읽어내어 한마디로 요약하면 "윤석열 총장 축출 없이 검찰 권력을 바꾸자"는 것이다. 내년 7월24일까지 임기가 1년 남아 있는 윤석열 총장을 당장 해임 경질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에게도 부담이 크다. 윤 총장을 문 대통령이 내치면 갑자기 정치적 에너지가 윤 총장에게 쏠리면서 야당 대권 주자로서 지지율이 급부상할 것이 염려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 측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윤 총장을 그냥 놔두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쥐어짜낸 고육책이라는 것이 결국은 검찰청법을 바꿔서 검찰총장 손에 들려 있는 수사지휘권을 빼앗아 고검장들에게 나눠준다는 개혁안이다.
검찰 조직은 대검-고검-지검, 이 순서로 돼 있다. 대검의 수장이 검찰총장이고, 고검의 수장은 고검장, 지검의 수장은 지검장이다. 대검 밑에 있는 고검은 모두 6곳이다.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수원 등이다. 그런데 지금껏 고검은 권한도 할 일도 별로 없는 한직(閑職)으로 분류돼 왔다. 고검은 항고 사건을 처리하면서 일선 수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곳일 뿐,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행사하는 곳이 아니다. 검찰 조직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곳은 당연히 한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과 대검이 갖고 있던 실권을 빼앗아 고검장과 고검 검사들에게 힘이 실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히 여섯 고검 가운데 서울고검은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서울고검 밑에는 정계·재계의 고위 실력자들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그리고 서울 동서남북 4개 지검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무·검찰 개혁위의 권고안대로 검찰청법 개정이 이뤄지게 되면 서울고검장은 지금까지 검찰총장이 갖고 있던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국 일가족 비리 사건, 울산 시장 선거공작 사건,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각종 사모펀드에 관련된 권력실세 개입 의혹 사건, 채널A 이동재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관련사건 등등 살아있는 권력실세들에게 메스를 들이대는 수사는 모조리 서울고검장 지휘 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또 한 번 단행할 예정이다. 그때 추 장관의 최측근인 이성윤 서울지검장이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할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다. 만약 이성윤 서울지검장이 서울고검장이 되고 개혁 권고안까지 현실화된다면 이성윤 검사는 그야말로 검찰 내 실질적 최고 권력자가 된다고 봐야 한다. 전라북도 출신인 이성윤 검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이고, 문 정권 들어서서 옛 중수부장에 해당하는 대검 반부패부장, 형사부장, 그리고 법무부 검찰국장 등 노른자위 핵심 자리를 독차지했다. 이성윤 검사는 올해1월 서울중앙지검장에 부임하면서 더욱 노골적으로 추미애 장관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나이 차이는 있지만 사법연수원 23기생 동기인 윤석열 총장과 사사건건 충돌을 빚어왔다. 사실상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이번에 권고안을 낸 ‘법무·검찰 개혁위 제2기 위원장과 위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작년 9월말 조국 법무장관 때 임명을 받은 사람들이다. 위원장을 맡은 김남준 변호사는 민변 소속이고, 노무현 정부 때 천정배 법무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냈으며,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의 법률지원단에서 활동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대학 1년 후배다. 또 법무·검찰 개혁위에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된 김용민·이탄희 변호사도 포함돼 있다. 오늘 한 신문은 이들을 ‘조국 수호 세력’이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이 만든 건 검찰 개혁안인가, 장악안(掌握案)인가", 라고 묻고 있다.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논란을 빚었던 법무·검찰 개혁위에서 낸 권고안의 골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박탈, △이성윤 서울지검장을 사실상 검찰 최고실력자로 만들어 주기, 그리고 △추미애 법무장관이 검찰총장 대신 6곳 고검장을 수사 지휘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검찰총장은 행정사무만 맡도록 돼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만들어 검찰이 중대 사건을 수사할 때는 법무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것 역시 노골적인 ‘윤석열 죽이기’였다. 이 정권은 뭐가 그리도 두려운지 세 겹 네 겹 겹겹이 윤석열 총장을 에워싸고, 손발 자르고, 땅에 파묻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제왕적 검찰총장을 없애겠다면서 반대로 법무장관에게 제왕적 권한을 주려고 하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총장 대신에 검찰청에 화분을 갖다 놓는 게 어때요?" "어차피 이분들, 식물총장 좋아하시잖나. 다육이를 권한다. 물 자주 안 줘도 된다. 분갈이는 2년마다 해주시면 된다." "그냥 검찰총장을 없애라. 지휘권도 없는 총장, 인사권도 없는 총장. 그 자리에 앉아 딱히 할 일이 없지 않나."
오늘 한 신문은 이런 제목을 달았다. "윤석열 식물총장 만들고, 이성윤 ‘서울고검 총장’ 되나". 그런데 "윤석열 총장이 꺾이고 나면, 이성윤이 사실상 총장이다, 추미애가 총장 겸직이다", 이런 비평들을 내놓고 있지만, 법무장관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수족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따지면 이제부터는 사실상 ‘문재인 검찰총장’ 시대가 열렸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July 29, 2020 at 04: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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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사실상 ‘문재인 검찰총장’ 시대 열렸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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